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를린 공방전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6px -10px" [youtube(xS1V5NvZrac)]}}}|| || 베를린 공방전의 1분 전개[* 서쪽에서 다가오는 것은 서방 연합군이며, 동쪽에서 다가오는 것이 소련군이다.] || >'''파시스트의 소굴, 앞으로 50km''' >----- >-소련군 전차의 낙서 [[제2차 세계 대전]]의 막바지였던 1945년 5월 [[소련군]]이 [[나치 독일]]의 수도 [[베를린]]을 함락시킨 전투이다. 독일 [[총통]]이었던 [[아돌프 히틀러]]는 베를린 함락이 임박하자 자살했고 히틀러에 의해 후임 [[독일 대통령]][* 총통이 아니다. 히틀러의 총통직은 나치 집권 직후 통과된 <[[수권법]]>으로 [[독일 대통령]]과 [[독일 총리]]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었으며, 히틀러는 원래 총리였다가 당시 대통령이었던 [[파울 폰 힌덴부르크]]의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해 총통이 되었던 것이다. 대통령으론 [[칼 되니츠]]가, 총리론 [[파울 요제프 괴벨스]]가 임명되었으나 괴벨스 역시 히틀러가 자살한 직후 부인과 하랄트 크반트를 제외한 어린 자녀 6명과 같이 자살했다.]에 임명된 해군 원수 [[카를 되니츠]] [[제독]]을 수반으로 하는 [[플렌스부르크 정부]]는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했다. [[알프레드 요들]] 상급대장이 소련을 배제하고 항복 문서에 서명하자 소련의 이의 제기로 [[빌헬름 카이텔]] 육군 원수가 베를린에서 소련을 포함해 [[게오르기 주코프]] 원수 앞에서 항복 서명을 했다.[* 독일은 이 무렵 소련의 보복을 굉장히 두려워했는데 이는 독일이 일방적으로 불가침조약을 깨면서 벌어진 [[독소전쟁]]으로 인해 소련 전체 인구의 20%에 해당하는 3,000만 명이 사망했기 때문이었다. 따라서 그나마 독일에 관용적이었으며 민주주의 국가였던 미국과 영국 측에만 항복하려 했으나 이미 미, 영, 중, 소 등 주요 연합국들은 타 연합국을 제쳐두고 일방적으로 추축국과 협상하지 않는 대원칙에 합의했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는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